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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라서 희망이다

Lovecontents 2010. 4. 6. 10:17

인터넷이 올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여러 언론의 확인에 따르면, 올 10월 발표될 노벨평화상 후보 중 하나로 인터넷이 올랐다고 한다. 노벨평화상은 “국가 간의 우애를 증진하고 군사력을 폐지하거나 감축하고 평화 추구 노력을 촉진하는 데 최대 또는 최선의 성과를 보인 ‘사람 혹은 조직’에게 주어져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도 조직도 아닌 인터넷에 노벨평화상이 주어질지,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2006년 미국의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로 인터넷 속 ‘당신(You)'을 선정한 것과 같은 파격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지지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능동적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이 힘의 중심을 해체하는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인터넷의 구조 자체가 비중심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의 정보와 다른 정보가 Hyper text로 대등하게 연결되어 있는 구조는 정보 간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없다. 끊임없는 넘나듦(hyper)만이 있을 뿐이다. 기승전결의 위계질서를 가지고 지식을 재편하는 책과 같은 선형적 정보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점이다. 이런 구성 원리 때문에 인터넷이 확대되면 될수록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도 힘의 중심이 해체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인터넷의 중심 해체의 기제를 풀어 말하자면 절대성의 세계에서 상대성의 세계로의 진입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시작도 끝도 없는 광대한 세계, 거미줄 같은 망(world wide web)을 통해 지구의 이쪽 끝 사람과 저쪽 끝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통로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의 사안, 사물,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큰일에 대한 만인만색의 블로그, 트위터 등을 통해 주류적, 중심적 관점을 벗어나는 신선하고 색다른 관점들을 숱하게 만나곤 한다. 인터넷을 잘 하는 것만으로도 해석의 다양성, 관점의 변화와 발전, 통합적 지식의 추구 등의 장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상대성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절대성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무언가가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공감할 수 없고, 일방향적 소통의 방식을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중심적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 위계적 질서를 통해 일을 꾸려나가길 꿈꾸는 사람들은 그래서 인터넷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 사용을 매우 세세하게 통제하는 중국의 정부가 그렇고, 인터넷 실명제의 확산과 더불어 여러 인터넷 규제 방안을 법제화하고 선거 시즌만 되면 인터넷망을 억제하려고 하는 이번 정권이 그렇다. 세상이 가시적 질서 안으로 들어오길 바라는, 그것도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코스모스 안으로 들어오길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터넷의 세계는 카오스의 공간이고 재앙, 그 자체이다. 가능하다면 인류 역사를 인터넷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인터넷의 세계는 마치 우주공간이 빅뱅 이후 팽창해간 것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로 넓어져만 간다. 새로운 인터넷 IPv6 체계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에 인터넷 주소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의 광대한 세계를 보장한다. 6개월에 한 번 씩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나는 저장장치의 확산은 전 인류가 생산하는 모든 텍스트를 인터넷 공간에 붙박이로 담아둘 수 있다. 한 사람이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생산한 담론들은 디지털의 형태로 사라지지 않고 인터넷의 광활한 공간에서 탈중심적 담론을 형성할 것이다. 카오스의 세계는 넓어져만 간다.

 

인터넷은 노벨평화상을 받을만하다.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어떤 구체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터넷이 기존의 중심적 권위를 허무는 새로운 카오스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치 유럽의 중세적 질서에 숨 막혔던 백인들이 미대륙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자유와 공화정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듯이, 인터넷에서 상대적 담론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 있다. 중심이 없는 사회, 힘의 불균형이 없는 사회야말로 평화의 전제 조건이 아닌가.

 

장자에 혼돈 이야기가 나온다.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흘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 하였다. 숙과 홀이 어느날 혼돈의 땅에서 만났을 때 혼돈이 그들을 위하여 잘 대접을 했다. 그래서 숙과 흘은 서로 상의하여 혼돈의 덕을 갚으려 했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이분만 홀로 없으니 시험 삼아 뚫어 주자“하고 하루 한 구멍씩 뚫어 7일이 되니 혼돈은 죽고 말았다. 인터넷의 세계에 무리한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인위적 구멍을 뚫는 일이 없기를, 온 인류가 인터넷이라는 카오스의 가능성과 희망을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방송작가> 201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