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010)
Poetry
9.2
늘 영화 보는 게 늦다.
개봉 시점에 영화관 찾기가 쉽지 않아서.
시, 이제야 봤다.
설날 특집 영화로 하는 걸 본 건 아니고
DVD로 빌려다 설 연휴에 봤다.
차이가 좀 있다.
TV에서는 영화 끝나자마자 광고가 튀어나와 버린다.
<하모니> 보다가 슬프디 슬픈 배우 나문희의 아련한 모습이 담긴 마지막 장면 바로 뒤에
공포 영화 장면이 나오는 관련 광고가 튀어나와 깜작 놀랐다.
참으로 영화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인간들이다.
<시>를 그렇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만한 영화다.
나는 참 감명깊게 보았다.
사실 시라는 단어만 봐도 아직 가슴이 뛰는 사람이긴 하다.
명색이 국문학도다.
제일 반갑고 갸륵한 것은
시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감독이자 각본 창작자인 이창동의 믿음이다.
"사랑을 잃은 소녀의 마음은 시가 될 수 있어도 돈을 잃은 수전노의 마음은 시가 될 수 없다"는,
쁠레하노프의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한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고도 죄의식 하나 없이 굴러가는 세상과 더불어서는 시를 쓸 수 없었던
미자 할머니의 그 마음은
문학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믿었던 문청의 치기, 그 열정을 무의식에서 끄집어내고 말았다.
미자 할머니는 온 몸으로 시를 쓰고
손주가 죽음으로 내몬 소녀와 한 몸을 이루고
그 자신이 시가 되어 떠났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 시는 세상을 구원했다.
이보다 감동적인 문학이 또 있을까 싶다.
물론 세상의 시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김용택 시인 옆에서 술 취해 비틀거리던 영화 속 젊은 시인처럼
'감각'만 빛나는 시인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인간이 덜 되었는데 시의 문체만 놀라운 시인들이 얼마며
삶의 깊이가 없는데 센스만 돋보이는 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창동의 영화 <시>는 시를 보는 원칙을 다시 제시한다.
치열한 삶이 없는 시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름다운 세상이 부재한 시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온몬으로 세상과 만나지 않는 시가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말장난을 버리고 시는 다시 삶의 깊은 심연과 만나야 한다는 원칙을 영화는 부여잡는다.
이 영화를 통해
이제 중년의 아저씨지만 다시 생각해본다.
문학예술이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시대의 위기를 스스로 읽어내고 몸부림쳐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새겨본다.
그런 문학과 예술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을 다시 성찰해본다.
인생이 아름다운 시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돌아본다.
추신.
이야기로서도 모범적인 영화라고 보았다.
이야기엔 갈등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이 꼭 주인공과 적대자를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부에서, 주인공과 불화하는 세계 사이에도 엄청난 갈등이 있을 수 있고
그것으로 팽팽한 긴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 이야기는 잘 보여준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배경 음악 하나 없이 긴장의 끊을 놓치지 않는다.
칸에서 각본상을 받을 만 하다.
그리고 진정한 문학이 죽어가고 있는 이 땅에서
0점을 받을 만도 하다.
둘 다 진실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