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평전
장준한 선생은 한신대학교 출신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일제 강점기 징병으로 끌려가다 일본군을 탈출한 의혈 청년.
탈출 동료들과 6000리를 걸어 임시정부를 찾아간 불굴의 민족주의 청년.
(6000리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세 번 왕복하는 거리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되어 해방 전 국내침공을 시도했던 독립운동가.
해방 후에는 <사상계>라는 잡지를 통해 계몽운동을 전개하고
이승만 박정희 정부의 무능과 독재를 정면에서 비판하던 정의로운 지사.
유신독재가 극에 달해갈 때 모종의 결심을 하다 의문사한 의사.
무엇보다 그 힘든 시절 한 순간도 성경을 놓지 않았던 신앙인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이런 기록만큼이나 극적입니다.
평전을 읽다보면 그 어떤 영화도 장준하 선생의 삶만큼 극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가령 이런 대목입니다.
<이렇게 하여 장준하는 결혼 2주만에 일본군에 들어가 훈련을 마치고 중국으로 파견되었다. 면회 온 아내에게 탈출 계획을 알리고 편지의 마지막이 성경구절 ‘돌베개’로 되어 있으면 부대를 탈출한 것으로 알아달라고 귀뜸하였다.
이미 며칠 전 면회하러 왔던 아내에게 장차 취할 나의 행동에 대해서 암시를 준 일은 있었다. 중국에 가면 꼭 매주 주말마다 편지를 하마. 만약 그 편지의 끝이 성경구절로 되어 있으면 그것이 마지막 받는 편지로 알아도 좋을 것이다. 당신이 그 성경구절을 읽고 있을 땐 이미 나는 일군을 탈출하여 중국군 진영이나 또한 우리 ‘임정’의 어느 곳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이 결심을 말했을 때 아내의 표정이 백지장 같이 변하던 그 모습은 그때 이후 오늘까지 반년이 넘도록 잊을 수가 없었다.
(중략)
벌써 며칠 전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다른 때와 달리 짤막한 사연을 엽서 한 앞에 적고 그 끝에 로마서 9장 3절을 인용했다. 나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라는 구절이다. 가만히 엽서를 내 뺨에 비벼대었다. 나의 체온이 묻어나 나 살던 곳으로 전해질 것이라는 생각보다도, 내 감상이 이렇게 해서 위로될 수 있다는 무의식이 나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설교를 들으며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교회당 앞줄 좌석에 앉아 숨을 모으고 있던 그 어린시절의 내 얌전한 모습 같이, 나는 마음이 가라 앉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이런 생각이, 회오리바람처럼 나를 감싸서 하늘로 치켜 오르게 하는 듯 했다.>
장선생은 로마서를 인용하는 것으로 일제 학병을 탈출할 신호를 보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이 부분을 읽으며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기독교장로회의 뿌리에 이런 분들이 버티고 계셨습니다.
자랑스러운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시에 장선생이 의문의 죽음을 당해야 했던 현대사는 불행하기 그지 없습니다.
민족의 힘, 한신대학교의 면면한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한번쯤 꼭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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