熒山私說/다큐멘터리의 세계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 죠슈아 오펜하이머, 2012.

Lovecontents 2015. 1. 2. 14:29



액트 오브 킬링 (2014)

The Act of Killing 
9.1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출연
안와르 콩고, 헤르만 코토, 시암술 아리핀, 하지 아니프, 사크햔 아스마라
정보
다큐멘터리 |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스웨덴, 핀란드 | 159 분 | 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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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가장 독특한 점은 학살자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작가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학살을 비판하거나 성찰하는 작품은 많았지만 

학살자에게 자기의 학살 경험을 영화로 만들게 하고 그 과정을 담은 작품은 처음이다.

그 점만으로도 이 다큐는 충분히 주목받을 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장점은 영화제작을 주도한 안와르라는 인물을 발굴했다는 데에 있다.

그는 인도네시아 군부독재의 잔인한 학살을 주도했던 준군사조직 판카살라의 행동대장 출신이다.

60년대 중반 200만이 넘는 양민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하고도 여전히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조직 덕에 

그는 영웅 대접을 받으며 풍족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인간이 영화 속에서 학살을 재현하거나, 고문당하며 죽어가는 역을 해보다가

점점 자신이 젊은 시절 저지른 행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실감하는 과정이야말로

다큐로서 이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다.

안와르의 다른 주변 인물들은 학살을 재현하면서도 전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 반성의 사고 구조가 만들어져 있지 않은 인간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은 옛 학살과 강간, 폭력을 이야기하며 희희덕 거리기 바쁘다.

그보다 더 높은 자리에 가 있는 자들은 오히려 자기 행위를 합리화하고 

그 합리화를 공고히 하는 의식의 완강함을 보인다.

그러나 안와르는 고문 당하는 연기를 하다가 자기가 고문한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를 체험하고

그들의 삶에 자기의 삶을 대입하며 오열한다.

마을 습격 장면을 찍다가는 부모와 터전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영화 제작이 끝난 뒤, 안와르는 자신이 고문과 학살을 자행한 건물 옥상에서 구토를 일으킨다.

아마 인생 처음 느껴보는 것일, 실존의 고통에서 비롯되는 그 구토가 이 영화의 핵심일 것이다.

영화관 깡패에서 출발한 그에겐 그래도 영화가 반성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예술이었던 걸까.

이미 실존의 고통을 알아버린 안와르가 힘없이 학살의 현장을 떠나는 뒷모습으로 다큐는 끝난다.

그가 다시 학살을 희화하는 인간이 될 것인지, 학살을 합리화하는 인간이 될 것인지, 고통하는 인간이 될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학살자의 내면을 이토록 가까이 들여다보는 경험을 다시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이 다큐는 오랫동안 독창적인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학살자들은 생각의 힘이 없다는 것, 그들의 학살 동기는 결국 부귀영화의 욕망에 머무른다는 것에 대한 처절한 깨달음과 함께.


* 덧붙이는 말

비슷한 이념 갈등을 겪은 나라의 사람으로, 우리 현실과 오버랩되는 장면을 보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니 이 다큐가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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