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이렇게 즐겁게 앎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장하준의 의견이 옳건 그르건,
지배적 상식, 주류적 세계관을 의심하고, 그것에 질문을 던지고, 톺아보는 그 태도 자체가 지적 즐거움을 준다.
거기에 구체적이고 매우 적절한 사례를 통해 그 의심과 질문을 하나의 다른 대안으로 이끌어가는 힘 또한 이지적 쾌락을 선사한다.
그가 주장하는 것의 요체를 나는 대강,
개인의 능력이 아닌 시스템, 공동체, 정책의 가치에 우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신봉하는 "내버려둬, 그럼 잘 될 거야"라는 말의 허구를 철저히 파헤친다.
경제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며
정치를 통해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공동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그 개입은 부족한 산업분야, 가난한 사람들을 보듬고 육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복지정책과 유치산업 보호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복지정책이 잘 되어서 일이 좀 실패하더라도, 직장에서 해직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우리 학생들이 첫 직장을 잘 잡기 위해 지금처럼 목숨 걸고 취업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첫 직장이 무엇이냐가 평생을 좌우하는 지금 분위기에서는
젊은이들이 패기있고 창의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가 없다.
물론 조건이 안 되더라도 도전하는 것이 젊음이기는 하겠지만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더라도 먹고살 만한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훨신 역동적이고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적 문화콘텐츠산업'의 영역에 도전하는 우리 학부 학생들도 훨씬 몸이 가벼워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제 막 발전하기 시작한 문화콘텐츠산업 분야에 대한 육성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문화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유치산업에 불과하다.
이것을 정책적으로 육성하지 않으면 금세 시들어버릴 척박한 수준이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자꾸 개방하고자 하는 영화시장만 봐도 그렇다.
경제학자들이 이미 헐리우드와 대등하다고 하는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스탭들의 처우가 어떤가.
그들이 영화일만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기 어려운 실정인데도
정책입안자들은 이미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문화산업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그나마 자리도 많지 않다.
정부에서는 문화콘텐츠산업이 비약적 성장세라고 말하는데
그 혜택은 메이저 문화기업에 집중되고,
실질적으로 다수의 중소 문화기업,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정말로 문화콘텐츠산업을 키우고 싶다면,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 걱정하지 않고 창조적 생산물을 만들 수 있도록 보호 육성해야만 한다.
그런 보호 육성책을 만들어 놓고 다른 나라, 특히 선진국과 경쟁을 시켜야 진정한 발전이 있다고 본다.
지나치게 국가주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
시민사회조직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무관심 등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을 상당히 많이 제시하고 있다.
경제 이야기이지만, 실사구시하면서 가치 있는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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